살아오면서 경험론적으로, 여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노력보다는 환경적 요소에 대한 지배를
남자들보다 더 많이 받는 다는 건 대충 알것같다.
물론 환경적 요소를 넘어서는 사람도 간혹가다 있지만
극소수의 표본인지라....
그냥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타인를 희생시켜서 편하게 사는 것은 폭력이다.
남들 부럽지 않게 살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는 있다.
또 거기에 대해 타인를 희생시키는 것은 폭력이다.
희생양.이 되는 것에 대해 꽤나 싫어하는 나란 사람이다.
메소포타미아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이름 모를 고원에서
굳이 제단에 묶여 올라가 죽을날을 기다리는 양과 같은...
그냥 보석을 바란다고, 자신은 속물이다라고 이야기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걸 자식에게 바라는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결혼한 남자에게서 얻어내지 못한걸
또다른 사람에게서 얻어내고 싶은 허욕과 탐욕의 산물이었을까.
이는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작고 반짝이는 거 알지?"라던
그 여교사가 이부분에서는 한발짝 더 나아가긴 했지만...
왜 그 욕망을 타인으로부터 채워야하는 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그건 본인들의 욕망들일뿐, 내 욕망은 아닌 거니까.
좋은 직장으로 자랑하고 싶은 욕망에 있어서는...
사실 내 욕망을 모두 지워져버렸다. 월급받고 사는 사람이다.
그냥 고용인일뿐, 구글같은 회사가 아니면 주역이되기 힘들다.
라는 걸... 직장생활들을 통해서 알고 있는 나라는사람이기에.
하지만 역설적으로 좋은 곳에서 직장생활하지 못한 그녀들은
그것으로 자랑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 자신이
갖치못한 것을 '자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
하지만 정작 그 좋은 직장에 다니는 이조차도 그 직장은 '자기 것'
이 아니다. 그냥 잠시 빌려 않는 자리일뿐, 언제든지 사라질수도,
나갈수도 있는 그런... 피크닉가서 공원에가서 좋은 목에 자리잡은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들 자신들을 모든 역할을 한다고 착각한다.
그녀들은 그녀들의 역할을 언제나 제대로 수행하지 아니했다.
일의 영역에서 그녀들을 진득하게 본적이 업어서 잘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인의 영역에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잘 수행못할뿐더러
자신의 자아도 성숙되어있지 못하다. 역할자아가 강하면 개인자아가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는 노릇이긴 한데... 둘다 아닌... 것이다.
즉... 타인지향형 인간군상이다.
그냥 그런 평범한 타인지향형 인간군상의 이성들을 많이 본다.
그렇게 많이 스쳐내보내버리고, 또 나는 그에 영향을 받지않기위해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렇게 정을 잘 붙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대신 정을 붙이게 되면 그만큼, 또 마음으로 마음써주는 사람이기도하다.
마치 정반합과 같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성에 대해 많이 지쳐버렸던 것같다.
많은 또래와 친구들이 싱글인 사람이 아주 적어진 상황에서
외로워는 한다. 얼굴보기 힘든 사람들이 저마다 연인과의 시간에들
집중하는 만큼... 말이다. 아마 하나둘 가정을 이루기 시작하면...
더 그렇겠지.
혼자로 남는다라는 건, 처음에는 두려운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만큼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길 원한다.
그럴떄 여행을 떠난다. 아무도 없어서 자유롭다라는 것을 다시금
온몸으로 느끼기위해, 인적없는 산길, 인적없는 도로를 그렇게...
아무도 없음으로써 자유를 온몸으로 체험하기 위한 혹사작업이다.
그 이후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혼자라고해서 역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남편, 아빠, 혹은 남친으로의 역할은 강하지 않더라도.
남편이나 남친이하는 배관수리, 전기등갈기뿐만 아니라
여성역할로 인지되어있는 요리, 빨래, 설겆이, 공과금, 세금, 관리비납부.
역할영역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역할이 아니면서,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이러한 모습은 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 원룸과 아주 비슷하다.
원룸은 결국 방/거실/주방/욕실.. 모든 게 분리되지 않은 원시공간이다.
이 공간이 확장분리되어 각자의 기능역할 붙여진 확장된 공간이 되곤한다.
삶의 모습과 공간의 모습이 어느순간 일치하는 어떤 지점에 놓이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한 가정, 하나의 세계를 같이 만들어갈 사람을 찾고 함께하고
그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 또 혼자라는 삶의 무게를 홀로 온연히 다 짊어지는 일.
어느 한 쪽도 쉬운 구석은 없다. 함꼐한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하지도 않으며,
혼자살아간다고 해서 화려한 싱글라이프가 준비되어있는 건 아니기 떄문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묻게된다. 어떻게 해야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그래서 위시리스트를 만든다. 또, 그 위시리스트가 너무 일반적이진 않게 고민한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타인이기 이전에 나를 먼저 고민한다. 이기적여서도 있겠고.
아니, 타인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뿐더러, 타인을 바꿔서 행복해지는 확율은 매우낮고
내가 행복해진채로 여유를 더 가지고 그 사람들을 지켜봐야 상황들이 풀려가기 떄문...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두서없이 생각의 흐름으로 계속된 이글 처음에서 보석을 바라던 여자들.에게서도
그 여자들에게 보석을 지속적으로 선물해 줄 수 있는 남자라면 괜찮을 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남자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녀들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설사 지속적으로 선물해줄수 있다손 치더라도, 시간의 문제일뿐 그녀들은 보석을
식상해하고 더 새로운 값진 것을 찾아서 요구해댈 것이다. 그것이 행복한 것인가.
그 식상해하는 모습은 또 다른 3자, 생활과학대에서 ㅡ_ㅡ 내게 C+을 준 철딱서니없는
전임강사를 통해서도 제3자의 눈으로 보았었기 떄문에... 모르지 않다.
그냥 물질에 대한 욕망, 자본주의의 소비의 대한 욕망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것인가.
타인의 것인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나 이사회에서는 많다고 본다.
그런 생각할 시간을 우리 자본님들은 전혀 주실 생각이 없으시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누가 소비를 할까. 그렇기 떄문에 자본님들은 우리를 야근시키고
광고를 보고, 예능을 보고, 드라마속의 물건과 삶을 욕망하도록 만드셔야한다.
그래야 자본님은 행복해지실수 있다.
그 욕망의 본질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욕망이다. (혹은 타인의 욕망은 욕망하고,
그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곤 한다.)
만일 무인도에 혼자 떨어졌을떄 아무런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떄도
그 물욕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물어보면 된다. 대단히 심플하다.
타인이 알아봐주지 않은 보석, 명품들, 직장들 무인도에선....
겉으로 보이는 것을 쫓는 이들에게는 지옥 혹은 감옥과같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그런 물건들로 인정받는 걸로 행복해진다라고 가정한다면,
그 물건이 없음으로 인해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도 생기게 된다.
마치... 우리네 어린시절 나이키운동화나 노스페이스 페딩과 같이 말이다.
무인도에서는 단지 운동화일뿐이고, 단지 페딩일 뿐이다. 본질은 그것 뿐이다.
그 색도 디자인도 사라진, 단지 기능만이 남는 예능속 삼시세끼 세끼집과같은 것이다.
그곳에서 커피는 어디원두 어디브랜드의 어떻게 블랜딩한 커피가 아니라 단지....
마시기 위해 멧돌에 가는 멧돌커피였듯이. 화려하지 않은 벽돌로 만든 허름한 화로가
빵을 굽고 고기를 익히기 위한 화로였듯이....
그런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런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싶다.
소탈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들. 자극적인 도시식당의 어떤 식단이 아닌...
시골밥상에 설탕치지 않고 조미료 많이 넣지 않은 거친 식단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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